여행

[중국] 11.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단발머리를한남자 2013. 5. 7. 19:25



이른 아침부터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중국여행중 나의 첫번째 목적지가 드디어 코앞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별다른 변수만 없다면 오늘저녁엔 도착할것이다. 

불과 하루였지만 막상 이들과 헤어지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좀더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좀더 함께 하지 못했고 받기만 한것 같아 미안하고 또,고마웠다. 떠나려는 나에게 기어이 아침까지 챙겨주고는 자신들의 연락처까지 건넨다. ‘징싱’은 공안의 번호까지 함께 적어주며 무슨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중국은 위험한 곳이니 조심해서 여행하라는 말까지 빼놓치 않았다. 

10년이나 차이나는 동생들임에도 어찌나 이렇게 형님같이 어른처럼 챙겨주는지 마음한켠이 따뜻하고 뿌듯하다.

“중국은 좋은사람이 많아. 너희들을 만난게 그 증거지"...짧은 영어로나마 쿨한 대사로 멋지게 떠나려는데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만남보다 헤어짐이 어렵다.

“안녕 친구들아 너희 덕분에 중국,중국인에 대해 많은걸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 고마워.”





길에서 현지인들을 만나면 늘 그렇듯 이런저런 질문이 오간다.

이런경우 이야기의 패턴이나 질문의 내용은 대개 비슷한 편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자전거는 얼마인지(?) 등등. 그리고 대화가 끊어져 서먹한 분위기가 되려하면 이번엔 내가 질문을 해본다. 내가 가려는 방향을 가리키며 “샤오린쓰(아닌가?)...샤오림쓰?”.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도 할겸 끊어진 대화의 물꼬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최대한 현지의 발음으로 표현하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한번에 알아먹는(?) 경우는 드물다. 역시 이번에도 동일한  단어를 엑센트와 억양에 변화를 주며 반복해 말해 보지만 어림도 없다.  이런 경우 바디랭귀지가 동원될수 밖에 없다. 다행히(?) 지금 나의 목적지는 몸으로 표현하기에 난이도가 쉬운 축에 속하는 곳이다. 

일단 내 행동을 잘보란듯이 눈빛을 쏴주고는 주먹을 꼭 쥔다. 

진지한 표정으로 허공에 펀치를 몇번 날린다. 이건 절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님을 강조하며 ‘휙!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넣어준다. 상대에게 느낌이 왔다는 눈치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리지 말고 발차기까지 곁들여 준다. 

대번에 “아~”하는 미소가 떠오른다.  


“아하~ 샤오린쓰....덩펑?...덩펑 솰라솰라~~”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는건 알겠는데 ‘덩펑'은 또 뭔가 했다. 

‘덩펑'은 내가 가는 ‘샤오린쓰'가 있는곳의 지명을 말한단다. 

지금까지 길을 물어볼때면 ‘샤오린쓰'가 어느쪽인지만 확인 했지 ‘덩펑'이나 그외의 지명을 언급하지 않았다는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자전거에 탄채 ‘불국사’ 가려면 어디로 가냐고만 물었던 것이다. 중간에 거치는 ‘대전'이나 ‘대구'는 생략한채, 거기다 ‘경주'란 지명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그러면서도 ‘덩팡'이란 새로운(?) 단어도 알게된 순간이었다.

이후 부터는 현지인들과의 소통이 더 쉬워졌음은 물론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굳이  ‘이소룡(?)’이 되는 상황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의 행선지를 이해했다.-_-;;;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덩펑시(登封市)'에 있는...샤오린쓰(少林寺) . 

한국말로는 ‘소림사’ 다.




정저우를 벗어나 국도를 찾아가는데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국도에 접어들자마자 시작된 언덕의 연속은 ‘무리’가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동안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때마다 ‘덩팡'으로 간다고 하면 누구나 일본 여자 연예인 ‘사유리'를 보는듯한 표정으로 자전거로 가려는게 맞냐고 몇번이나 다시 물어왔다. 

그럼 난, 절대 미치지 않았다는 얼굴로 여유있게  내 자전거를 어루만지곤 했는데...이제서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 이유를 이해할수 있었다. 

덩팡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의 존재를 알던 그들은 자전거로 그곳까지 가려는 나를 이해할수 없었던 것이다. 

“얘 바보 아니야" 스러운 그 표정의 의미를 늦게나마 알아 들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이미 때는 늦었다;;;

어차피 미리 알았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겠지만-_-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내가 딱 그랬다. 

오르고 올라도 언덕의 공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침까지 챙겨먹고 상쾌하게 출발한지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얼굴에선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저우에서 내가 가려는 덩팡까지는 80~90km.

여유있게 가더라도 하루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이란게 ‘숫자'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깨닫는데엔 그리 긴시간이 필요치 않다. 수치상으론 분명 멀지 않은 거리지만 이 숫자안에 언덕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길이 얼마나 구불구불 이어질지는 알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도상의 ‘직선거리’일뿐 참고는 되어도 절대적이 될수는 없다.

하루만 고생하면 도착할거라는 희망찬 계획은,  끝날것 같으면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시간이 내려서 끌고 가는 시간에 역전될 무렵 저 멀리 나처럼 자전거를 밀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2명이다.

아는체를 하기는 커녕 여행자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먼 거리였다. 평지라면 조금더 속도를 올려서 폐달을 굴리겠지만 이 한몸도 감당하기 어려운 오르막을 짐까지 실려있는 무거운 자전거를 밀고 가는 형편이라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하다 어느순간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내가 할수 있는건 일단은 페이스를 잃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고개를 오를 뿐이었다. 


‘인연'이 있었나보다.

한참동안 자전거를 탔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아까봤던 그 친구들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발짝한발짝 자전거를 밀며 올라가는데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게 느껴졌다 . 그들 눈에도 자전거를 밀고 오는 여행자의 모습에 흥미가 있었던지 그들 곁에 내가 다다를 때까지 천천히 앉아 기다려 주었다. 


정저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아침에 출발했다고 한다.

나도 정저우에서 오늘 출발했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연휴를 맞아 가볍게 ‘소림사'로 자전거 여행을 가는 길이란다. 듣고 있던 나도 소림사로 간다고 하니 두번 놀라는 눈치다.ㅋ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일행이 되었다.


중국에 와서 ‘기어'가 달린 제대로 된 자전거를 보기는 쉽지가 않다. 정말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느정도 경제적 여건이 안정된 분들의 취미활동에서나 볼수 있는 편이다. 

이들이 탄 자전거도 일반 생활 자전거였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레벨은 초보여행자인 나의 수준을 상회하기 충분한 실력이었다. 


중국이 워낙 자전거 대국이라 그런지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자전거스킬에 있어서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밀고 오르다 보면 무거운 일반자전거에 탄채 꿋꿋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는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오로지 다리의 힘만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전문용어로 ‘댄싱'이라 부르는 엉덩이를 안장에서 떼고 자전거를 좌우로 흔들며 오르는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쨌든 처음으로 일행이 생겼다는 사실은 기분 좋지만  자전거에 실린 짐의 무게 때문에 속도가 더뎌 잘 따라 갈수 있을지 걱정됐다.

다행스럽게도 내 자전거가 나쁘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들의 자전거 스킬이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라 그랬는지 제법 조화를 이루는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는데 모처럼 자전거 라이딩의 재미까지 느낄수 있었다. 함께 달리는 상대를 의식하니 괜히 속도도 오르는것 같고 힘들어도 서로 의지가 되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가는 기분이다. 여럿이 무리지어 다니는 자전거 동호회원들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되기도 했다. 혼자 달릴때와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는 길이었다.







오후늦게 들어선 동네는 분위기가 지금까지의 도시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유난히 빡빡머리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무리를 지어 줄을 맞춰 구보를 한다던지  조금만 넓은 공터라도 보일라치면  쿵후동작을 연습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 콧물 흘리는 흔적이 선명한(?) 아이들부터 제법 어깨가 각이 나오는 청년들까지 연령도 다양해 보였다. 

대단했던건 아직 장난끼 가득한 아이들 조차도 쿵후 동작을 시연하는데 있어서 힘과 절도가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대충 엄마에게 떠밀려 집앞 태권도 도장에 다니는 한국아이들의 표정이 아니다. 살벌하리만치 예리하고 진지한 눈빛들이었다.

넋을 잃고 보다 사진을 찍기도 하는 관객(?)을 의식했는지 그제서야 부끄럼을 타며 괜히 함께 있던 친구들과 장난을 친다. 역시 꿈많고 밝은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소림사’까지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길 가에서 연습하는 아이들의 옷차림도 조금씩 변하는게 보인다. 

tv나 영화에서 보았던 소림사 수도승의 주황색 도복(?)이 보였을땐 비로소 목적지가  가까워 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덩펑'에 도착했다고 당장 눈앞에 소림사가 나타나는게 아니었다.

표지판에 의지해서, 때로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물으며 한참을 더 들어 가야 했다. 아니, ‘올라가야’ 했다;;; 

빡세게 오르막에 시달린 오전 이후엔 이제 오르막은 끝이구나 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나의  ‘인내력’ 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방심했다;;;

소림사가 ‘숭산(嵩山)' 에 있다는걸 깜빡했다.

소림사도 한국의 사찰들처럼 산속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던 것이다.

한참이나 올라가는 산위 까지 깨끗한 아스팔트길이 이어져 있다는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겨우 사람의 얼굴을 되찾았건만(?) 또 다시 굳은 표정이 땀에 젖기 시작한다- _-;;;






해가 지기 전에 느긋하게 숙소를 잡을줄 예상했는데 주위가 컴컴해 지고서야 겨우 도착했다.

저멀리 아스팔트 옆으로 ‘소림사'의 입구(?) 가 보였다. 

처음 도착한 길이고 군대군대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지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불빛이 닿는 곳은 그나마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곳은 암흑 그자체다. 

산속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주위가 더 캄캄하게 느껴졌다. 


더 어두워 지기전에 숙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행길인데다 가이드북 비슷한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다보니 위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온종일 함께한 이 친구들이 중국인들인 만큼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일단 이들을 믿어보는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루종일 이들의 뒤를 따라온 터라 역시 아무생각없이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자동차 도로에 세워진 크고 높은 가로등이 아니라 공원내 산책로에서나 보는 자그마한 가로등이라 밝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더 충격이었던건  공원 안쪽에서 ‘도로’로 나가기 위해  빠져 나오는 자동차들의 불빛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헤드라이트의 방향이 죄다 ‘상향’으로 비춰대서 앞에 가는 친구들의 자전거 마저 시야에서 ‘증발'되기 일쑤였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앞을 보기도 힘들다.

위험천만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인데다  왼쪽에선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자동차들의 행렬때문에 신경이 바짝 설수 밖에 없었다. 

백밀러에 안부딪치는게 이상할 만큼 위태위태한 주행이 이어졌다;;;


주변을 보면 꽃이나 작은 나무들이 보이는게 화단이 조성되 있는것 같았다. 

누가 봐도 낮에는 관광객들이 거닐었을 산책로 같은데 무슨 차가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안쪽 주차장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차량들 같았다.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너무 깊은곳까지 들어오고 말았다. 자전거를 잠깐 세우고 “이봐, 숙소를 찾는게 먼저 아닐까. 이 길이 맞는거야"라고 의논을 하기엔 그럴 공간도 여유도 없었다.

바로 옆에서 스쳐가는 자동차에 부딪치지 않게 달리는데만도 충분히 에너지를 쏟아 붇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숙소가 늘어선 동네(?)가 나올거라 믿었던건데 완전히 실수였다;;; 

애초에 이들의 생각은 늦었지만 소림사를 먼저 둘러 본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길이 숙소가 있는 동네로 가는 길이 아니라 소림사 방향이란걸 그제서야 알았다. 상황파악(?)이 되자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주변이 깜깜하고 사람들이 공원을 빠져 나가는데 폐장시간을 넘겼다는걸 얘네들은 모르는걸까...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가....내가 뭔가 놓치고 있나.

말문이 막혀 굳어 있는동안(?) 머릿속에서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여러가지 가설(?)들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생각을 다시 해봐도 지금 이 밤중에(8시다;;;)  소림사를 구경하러 들어간다는 이 친구들의 계획이 잘못 되었다는데 도달했다.


먼저, 지금 현재 우리들의 상황...정체된채 느릿느릿 꼬리를 물고 움직이는 자동차들 곁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고 우왕자왕하는 세명의 자전거 탄 남자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아니라 설득하기 시작했다.

소림사는 폐장했다. 지금 들어가는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주변이 어둡고 자동차가 너무 많다. 위험하다...그러니까 구경은 날이 밝는 내일하고 숙소를 찾는게 먼저다.

서로가 서툰 영어였지만 이들도 나의 설명에 동의 하는 눈치였다.

결국 자전거의 방향을  180도 틀어, 왔던길을 고스란히 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30분뒤...나는 마당엔 돼지우리가 있는 시골스러움이 인상적인 숙소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동차들 틈에 갇혀 달리느라 긴장을 했던지 이제야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루종일 언덕에 시달리고 땀에 쩔고 막판엔 교통사고의 문턱(?)까지 경험했더니 완전 녹초가 되고 말았다;;;;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난후 가게에서 ‘하드(아이스바)’ 3개를 샀다.

옆방에 있는 오늘 온종일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하나씩 나눠 먹었다.  약속을 한것도 아닌데 시커먼 세 남자의 얼굴에선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다들 비슷한 생각일까

‘버라이어티'했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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