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 14.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단발머리를한남자 2013. 12. 3. 23:16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내려서 밀고 가는 시간이 길었다.

아침부터 오르막길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지가 한번씩 등장하긴 했지만 내리막은 나올 생각을 안했다. 이른 시간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아스팔트 덕분에 땀도 무척 흘렸다. 흘렸다기 보다 쏟아졌다는 말이 맞을것이다. 이곳 중국땅의 햇님은 아직 5월인데도 벌써 한 여름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좀 살살 하셔도 되는데..;;(여행 당시는 5월) 


흘리는 땀에 비례해서 갈증을 느끼는 주기도 짧아졌다. 

자전거 프레임과 패니어에 달아 놓은 물은 강렬한 햇빛때문에 어느세  ‘온수'가 되어버렸다. 그냥 먹기엔 불편하고 안 먹자니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벌컥벌컥 박력있게 마시기엔 부담되는 온도였다. 마셔도 젼혀 시원하지 않은 물. 갈증은 달랠수 있었지만 물방울이 알알이 맺힌 시원한 얼음물을 쏟아 넣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 물이라도 있어서 갈증은 해결할수 있으니 없는것 보단 낫다...고 아까부터 계속 자기최면을 걸며 걷고 있었다. 



정오를 넘어서자 가혹한 햇빛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기분탓도 있겠지만 아스팔트의 온도도 더욱 뜨거워 지는것 같았다. 고통과 번뇌, 분노와 짜증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중간 중간 입 밖으로 나오는 욕지기가 추임새를 더하고 있었다. 주변에 어떻게 앉아 쉴만한 공간도 없다. 햇빛을 피해 잠깐 숨돌릴 만한 자리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도로였다. 이런때 타이어펑크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그늘이라곤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는 뙤약볕 한가운데서 페니어를 일일이 분리하고 바퀴를 떼어내고, 다시 쪼그려 앉아 펑크를 해결,  역순으로 바퀴를 끼우고 패니어를…...생각만해도 하늘이 노래진다-_-;; 


오르막이 많아지니 이동거리도 더뎠다.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으로 침대위에서 그날 이동한 거리 만큼 지도에 싸인팬으로 선을 긋는데 오늘은 그런 일이 없을것 같다. 이동 거리가 짧아서다. 보람찬 하루를 보낸 성취감에 뿌듯해 하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 기운이 빠진다. 의기소침 모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의지력이 증발하며 몸이 더욱 무거워 졌다. 물먹은 스펀지 처럼 축축 늘어지는게 한발 한발 내딛기도 버겁다. 일사병이건 열사병이건 뭐가 됐든 길위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는 뉴스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몸소 ‘채험’하는 중이었다. 



옆에서 씽씽 달리는 자동차가 부러웠다. 

한시간 전부턴 오토바이로 부러움의 대상이 옯겨갔다. 똑같이 바퀴가 두개 달린 이륜차지만 힘차게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박력에  마음을 뺏기는 중이었다. 

동시에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자전거를 밀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나. 무거운 자전거를 중국까지 가지고 온 내 의도가 뭔가 등등...잠잠하던 108번뇌(?)가 다시 기승을 부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다음번 여행은 오토바이란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래 다음은 오토바이, 내 오토바이 여행 하고야 만다. 오토바이. 오토바이다! 다음은 오토바이. 가물가물 하던 ‘의지’에 생각도 못했던 오기가 발동하며 다시 한번 없던 힘을 끌어 모았다. 이를 악 물고 다시한번 기운을 짜냈다. 




힘들어 죽겠다. 

오만상을 찡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있는데 저멀리 언덕위에  자동차가 한대 멈춰 있는게 보였다. 빨간색이다. 조금전 내 옆을 지나가던 차였다. 색깔이 눈에 띄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자동차들은 가던 길을 잘 달려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면 지금 저 빨간 자동차는 길 옆으로 부드럽게 멈춰섰다는게 차이라면 차이점이었다. 


언덕위에 멈춰 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나를 히치하이킹 해주려고(?) 기다리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라고 말을 걸면 뭐라 그러지?...여유있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해야지. 괜찮다는 말은 중국어로 어떻게 되나...아니, 영어로 하자. 영어를 알아들을까?...한번만에 올라타면 이상할까? 좀 없어보이려나. 한번쯤은 괜찮다고 튕겨야지, 아니야 못이기는척 한번더...ㅎㅎ


...미쳤다-_-;;.

햇빛 아래를 몇시간째 걸었더니 머리속이 뜨거운 열기에 익어 버렸나보다. 이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_-;;  정신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그래도 말을 걸면 웃으며…(이봐!!!!)



내안의 또 다른 자아와 티격태격(?) 하다보니 200m젇도 앞에 있던 빨간 승용차가 어느새 10m 앞까지 왔다.

물론 그런일은 없겠지만 자동차와 거리가 좁혀질수록 신경이 쓰이는건 어쩔수 없었다. 

당장 불쾌하고 짜증섞인 절망스런 내 표정부터 좀,  어떻게 수습을(?) 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나름 그래도 외국인인데 찌질하게 비춰진다면 한국인에 대한 외곡된 인식을 심어 줄수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에서….는 무슨!!.  깔끔하지는 못해도 혐오감을 줄수는 없었다-_-;;; 나도  남잔데 약한 모습 보이긴 싫었던것이다.


자동차 뒤로 다가가는데도 차는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가 길을 막고 있으니 돌아가기 위해 왼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운전석이 있는 쪽이다. 보기 싫어도 백미러로 내가 비치는 위치다. 

나도 모르게(?)  녹초가 되어 굽어있던 허리가 쭉 펴졌다. 움츠러 있던 어깨에 힘을 넣고 닫혀있던 가슴을 활짝 펴고 걷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조금 전까지 다 죽어 가던 노숙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쪽에서도 나의 생각처럼  봐줄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밀며 정차된 자동차의 옆을 걸어갔다. 

당연히 앞의 생각들은 나 혼자만의 ‘망상’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 상상이 현실로 이어진다면  당장 광화문 앞에 돗자리를 깔아야 할 것이다.  

그럴일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계속 다른 생각을 한다. 너무 지치고 힘이 부치다 보니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고통'에서 멀어질수 있었다.  군대에서 힘든 훈련중에 애인이나 짜장면, 휴가 등을 떠올리는것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크크큭…” 엉뚱항 상상이자 그럴일은 없다는걸 알면서도 문제의(?) 자동차옆을 지나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황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지이잉...’

!!??....

파워 윈도우(자동차 창문)가 내려가는 소리 였다.  잠시나마 재밌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자동차를  막 지나치는데 그 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 뒤에 멈춰 있는 빨간색 자동차에서 말이다. 

설마, 정말 태워 줄려고?...는 아니고-_-;;; 

고개를 돌려 보니 운전석에서 왠 사내가 손짓을 하는게 보였다. 조수석 쪽에도 한명이 더 앉아 있었는데 여자인걸로 보아  남자의 애인인듯 보였다. 


웃으며 “니하오~”하고 먼저 인사했다. 그러자 사내도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어찌나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지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얼른 정신줄을 잡고 “하하, 전 중국인이 아니고요 한국인입니다. 중국어는 못한답니다. 하하..” 라고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쏟아지고 이어지는’ 중국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 말 을 중간에 끊는건 또 예의가 아닌것 같고…;;;  



“네, 전 한국에서 왔답니다"

사내의 말이 끝나고 이어진 나의 소개가 끝나자, 그는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과  달랐는지 잠깐 동안 어리둥절해 했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에게 나를 소개하면 다들 처음엔 이렇게 놀라는 반응이라  나까지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눈앞에서 벌거벗고 뛰어가는 외계인을 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놀랄 것 까지야;;; ….하지만 이해 할수 있었다. 나 역시 이런 곳(?) 에서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을 만난다는 건 전혀 뜻밖의 일 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시도 관광지도 아닌 외진 국도 변, 거기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국인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저 한국 사람 맞습니다ㅋ”

자전거에 달린 태극기를 가리키자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 한 듯 사내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자친구에게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의 흥미로운 설명이 끝나자 여자친구쪽 도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사람의 초롱초롱한 들뜬 눈빛을 보니 괜히 쑥쓰러워 진다.

칭다오에서 출발해 시안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자 지금까지 만났던 중국인들처럼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가만 있을까 하다가,  2000km도 넘게 떨어진 윈난성까지 간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별 대단한건 아니고 약소한 목표라고 할까요’하는 얼굴로 ‘마초’필(?)의 거드름도 조금 보테서. 사실은 힘들어 죽겠지만-_-;;  좀 더 놀라고 관심가져 달라는 속 좁은 마음에서 그런 건 아니고;;;

‘윈난성’이란 지명의 위력(?)은 생각했던것 이상이었다. 한개였던 엄지손가락이 두개가 되고 세개를 넘어서 발가락까지 동원할 기세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윈난성은 중국인들도 한번쯤 여행하고 싶어하는 인기 광광지였다. 새롭게 떠오르는 핫스팟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이분들의 호응엔 여기서 수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자전거로 간다는 말에 더 놀라워 해 주는것 같았다. 대단하단 말이 멈추지 않는걸 보면 말이다.


중국인인줄 알았단다.

운전을 하는데 길옆으로 지나가던 내 자전거를 보고는, 자전거 여행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차를 멈춘 것이라고 한다. 근데 뜻밖에 외국인이라 놀랐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즐거워 보였다. 물론 나도 즐겁고.

불편한 의사소통 이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혼자는 위험하니 조심하란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손짓과 단편적인 단어의 조합 만으로도 그들의 선한 마음씨와 친절을 느낄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이 짧은 만남으로 인해 기분전환이 되었다. 불과 5분전만 해도 땀과 불괘함으로 찡그림만 가득했던 얼굴이 완전히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새 내 얼굴에도 그들처럼 웃음끼로 가득찼다. 없던 기운도 팔팔해졌다. 이들의 즐거운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된것 같다. HP와 MP가 가득 회복되었다(웃음)



오랜 만남도 아닌데 헤어짐이 아쉽게 느껴졌다. 뭔가 빠진듯한 찜찜한 기분도 있었다. 무슨 이유로 이 처럼 마음이 불편한가 했더니 지금껏 기념사진 한장도 남기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행운을 빌어주고 고맙다고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다 보니 그만 깜빡 하고 만 것이다. 진한 아쉬움이 밀려 올 때 쯤엔 이미 난 떠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진 한장 찍자고 잘 가는 차를 도로 세울수도 없고;;;

대화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_-;;



멀어지던 차의 꽁무늬에서 갑자기 빨간 브레이크등이 켜졌다.

차가 멈췄다.

핸들을 조용히 왼쪽으로 기울이며 주행차선을 타고 그대로 쭈욱 나아갔어야 정상인데 10미터도 채 못가서 멈춘 것이다. 뽑은지(?) 얼마 안된 새차 같던데 무슨 문제가 생긴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잠시 후 조수석 문이 열리고 아가씨가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까지 열고 안을 살피기 시작하자 불안이 점점더 커지기 시작했다.

“맙소사. 설마, 정말 고장이 생긴건 아니겠지” 저들은 나에게 새로운 기운을 안겨다 줬는데 난 ‘고장’을 안겨다 주다니... 나란 인간은 불행을 몰고 다니는 남자란 말인가. 이런 결말 정말 싫은데ㅠ_ㅜ;;;;;;;

해피앤딩의 열망을 담아 왼발에 ‘해피’, 오른발에 ‘앤딩’을 복창하며 얼른 자동차 쪽으로 걸어갔다(물론 마음속으로-_-;)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가씨가 뒤돌아 보았다. 그리곤 트렁크 한쪽에 놓여있던 종이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쑥 내민다.

‘물과 음료수’였다. 출발하고 보니 생각이 난건가;;; 이걸 전해주려고 다시 멈춘 것이었다. 귀찮지 않았을라나, 출발했는데 굳이 다시 멈춰서는...고맙게시리... ;; 그제서야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풀렸다. 난 정말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어쩌나 불안 했는데;;(웃음)

워낙 뜻밖의 깜짝 선물이었던지라 처음엔 어쩔줄 몰랐지만 고맙다는 말을 잊지는 않았다. ‘셰셰’만 스무번은 한것 같다ㅎㅎ그리고 이번엔 ‘사진’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틀 연속으로 행운의 천사를 만났다.ㅋ 

어제(13.이것은 자전거 여행기입니다)도 자동차를 타고 가던 친구들이 ‘길’에서 친절을 배풀었는데 오늘도 길위에서, 그것도 물도 체력도 바닥을 치던 가장 힘들때 말이다. 상황이 어려운 때 였던 만큼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난 불행을 몰고 다니는 무서운(?)사람은 아니었다-_-;; 




잊혀질만 하면 돌아오는(?) 자전거 여행기 입니다-_-;

지나치게 오랜만의 업데이트라 죄송합니다. 

지난편에 여행기를 쓰는데 힘이 된다며 다음뷰의 손가락 마크를 클릭해주셔요 하고 말씀 드렸는데 '39'가 찍혔더군요. 

제 블로그 통틀어 최고기록 입니다;;ㅋ

그 분들께 사과말씀 드립니다. 나름 좋아요(?)를 표현해 주신건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네요. 

사실 다음편도 언제까지, 또는 빨리 올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기대성 발언을 하기가 좀 어렵기도 하구요;;

그렇지만서도...업데이트에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글씨가 많아서 지루하진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 13.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http://behindbusan.tistory.com/340

[중국] 12. (하)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http://behindbusan.tistory.com/317

[중국] 12. (상)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http://behindbusan.tistory.com/314

[중국] 11.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http://behindbusan.tistory.com/312

[중국] 10.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http://behindbusan.tistory.com/239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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