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 09 (하).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단발머리를한남자 2012. 12. 12. 21:20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오전부터 몇번이나 지나쳤던 그렇게 흔하게 보이던 장거리운전자들을 위한 숙소도 나올 생각이 없나보다;;;

붉은 노을을 그리며 해가 떨어질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 있었다.


텐트를 쳐야할지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할지...고민이 시작되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놓고도 '통일'을 외치는 우유부단한 나에게 신속한 판단을 기대하는건...좀,그렇다-_-;;

설마...

그래도...?

혹시나...하는 기대감에 페달을 밟고 또 밟아도 이 한몸 누울 장소가 '짠~'하고 나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번 이야기에도 썼지만([중국] 09 (상).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 나의 여행 '행동강령'(?)에 '야간라이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있다.

자전거 여행 '초짜'로서 안전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국은 해가 지면 너무 어둡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깜깜해도 너무 깜깜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다리가 페달을 돌리고 있는지 아니면 말춤을 추고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완전한 어둠.

'야간산행'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것이다.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해 울퉁불퉁하고 불친절한 바닥을 디딜때의 막연한 불안감을 ....

중국 국도변엔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로등이 없는곳이 제법 많았다.

해가 지면 동네 가정이나 구멍가게 불빛이 아니면 사방이 암흑이었다.

앞이 보이지를 않으니 달릴수도 없다.

덕분에 이몸은 해가 지기전에 착실하게 퇴근(?)하는 여행자가 될수있었다.-_-;;


성실했던 '모범여행자](?)의 모습이 지금 깨지려 하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자 갑자기 존재감조차 잊고 있던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놀랐다...감격스러울정도로;;;

가로등에 불 들어 오는게 뭐가 놀랍겠냐마는, 여행을 시작하고 오늘에야 '불빛'이 들어오는 가로등을 처음 만났다-_-;;(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그동안 지나온 마을들이 대부분 '가구수'가 많지 않은 국도변의 조그만 동네들이라 가로등이 설치조차 되지 않은 곳이 부지기수였다.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가로등 불빛을 오늘에야 만난 것이었다ㅋ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성도'라면 그 지역의 가장 크고 발전된 도시.

'성도'의 입구라 그런건지 가로등도 '착실하게'들어오고 도로 상태도 너무 좋았다.

차도를 보니 밤이라 그런지 과속하는 차 들은 많았지만, 차량수는 적은편이었다.

차도 없고, 길도 밝고, 도로상태도 좋고...달려도 되는(?) 조건들이 어서빨리 이몸을 '성도'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ㅋ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야간라이딩'에 도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쉬지않고 끝까지 달리기로 마음을 정하자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배'가 고파서 가벼워졌음을 느꼈다.(이런-,.-)

평소대로 였다면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겠지만 오늘은 숙소 가격흥정에 시간을 뺏기면서 저녁을 건너뛰고 말았다.

낭패다. (비상식량도 아까 오후에 다먹었는데-_-;;)

이곳은 식당 비스무리한것(?)도 보이질 않는게 정상적인 곳이다.

국도로 나온후부터 숙소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살펴도 '민가'하나 보이질 않았는데...식당이 등장 할리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건 아직은 살만하다(?)라는 정도...;;;;

자전거 패달 속도를 줄여야겠다-_-;;;;;

패달 2번 밟을걸 1번만 밟으면 칼로리 소모도 그만큼 줄겠지...아닌가?

줄거야...아니야...준다니까...아니라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같은 그다지 이유도,결론도 중요치 않은 망상을 하다보니 저멀리 반가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믿을수 없었지만 '먹을거'였다.

수.박.

말도안돼...

가느냐 말아야하나 고민할때 가로등켜진 쭉 뻗은 도로가 '쨘'하고 나타나더니...배가고파 위기(?)가 닥치자 먹을게 눈앞에 나타났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옆'에 내가 있기라도 했던걸까...;;;;ㅎ

날도 어둡고 주변에 인적도 없는 국도 한복판을 달려왔더니 '수박'아저씨까지 어찌나 반가운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수박 반통을 먹어버렸다.

빨갛고 실하게 잘익은 수박을 기분좋게 한입 베어물었다.

...한입, 또한입, 그럴때마다 풍부한 과즙과 달콤한 과육이 입안가득 맛있.....지는 않았지만 배고픔은 조금 면할수 있었다-_-;;;

반만 먹었는데도 일단, 갈증과 허기가 많이 가셨다.

배도 든든해졌고 보충된 '칼로리'를 태워버리기 위해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아...도로상태는 좋은데, 불만 들어오면 밤에도 괜찮을것 같구만...하는데 가로등에 불빛이 뙇!!


늦은 시간까지 퇴근(?)도 하지 않고 수박을 파셔던 사장님.

덕분에 배를 채울수가 있었네요^^;;




아직도 국도변 어디쯤인지...아니면 이미'정저우'란 도시로 들어온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여전히 왠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폭만한 도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넓은 도로위로 황금빛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데...정작 '인적'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전혀...

다들 약속이나 한듯 어딘가로 가버린건지 가끔 지나가는 승용차가 아니라면 마치 '유령도시'를 보는듯햇다.

...물론, 지금 시간이 12시가 조금 넘은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세계에서 '인구'로만 보면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하는 나라 아닌가;;;

이렇게까지 사람 코빼기 하나 안보이다니...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일찍일찍 귀가한다는건 그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는 뜻?

그만큼(!) 위험하다는...

그만큼(!!) 신장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다는...

그만큼(!!!) 실종되는 사람도 많다는...???

무서운 괴담이 또..-_-;;.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남은 수박 반통을 마저 먹고 다시 달렸다;;;


도로와 인도는 텅 비었지만 주변에 들어선  빌딩들을 보니 드디어 정저우란 도시에 도착했다는걸 알수 있었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착은 했지만 나의 '완주'는 아직 끝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이 새벽 1시정도가 되었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쉴곳이 필요했다.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길 옆 적당한 곳에서 시간을 떼울까도 생각했지만 춥고 바람도 쌀쌀해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다.

주변 빌딩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이 들어와 있는 건물이 없었다.

반짝거리는 네온사인조차 보이지 않는 껍데기만 남은 건물들이었다.

아직 도시 중심으로  들어온게 아니라서 그런거라 생각하고, 이 시간에도 사람이 많이 모일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정저우 기차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방 소도시도 아니고 '성도'의 기차역이라면 분명 이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기차역이 어디에 있는건지 모른다는 것인데-_-;;

일단, 앞으로 앞으로 계속 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달리는데, 정말 저멀리 회전교차로 한켠에 '택시'한무리가 모여있는게 보였다.

영업중 잠깐 휴식시간을 갖는 택시들로 보였다.

늦은시간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를 달리다 사람들을 만나니 또(?) 무척 반가웠다.

5시간전 수박아저씨 이후로 처음만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사람? 세상에! 이 밤늦게 자전거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요? 정저우 역이요?...일단 자전거는 트렁크에 실어요. 가까우니 데려다줄께요."...라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길이라도 가르쳐주니 다행이었다.-_-;;

또다시 부지런히 텅텅빈 도로를 달리자 헤메지 않고 제대로 찾아온건지 제법 다운타운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연 새벽 1시가 넘었건만 '성도'는 대도시가 맞았다...방금 전과는 전혀다른 삐까뻔쩍한(?) 풍경이었다.

좌우에서 다양한 빛깔의 현란한 네온사인이 보이니 이제야 정말 내가 '도착'한게 맞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어지됐든(?) 도착했다는 성취감과, 사람들속에 있다는 안도감때문인지 급격하게 배가 고파졌다-_-;;

저녁을 건너뛰고 수박한통에 허기를 달래며 도착한터라 일단 뭐라도 좀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기차역에도 다양한 음식점이나 스넥코너가 있듯이 이곳 정저우역에도 음식점이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대부분 문을 닫은 곳이 많았지만 아직 영업하는 몇군대 가게가 눈에 띄었다.

쌀쌀한 새벽공기를 뚫고 자전거를 타고와서 그랬는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땡겼다;;

음식점 바깥에서 커다란 통유리로 실내를 바라보고 섰다.

히터가 나오는 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나는 만두와 국수를 보고 있자니, 왜 갑자기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르는지-_-;;;;; 


메뉴판 장식이나 인테리어가 흔히 보는 프렌차이즈 햄버거가게같은 스타일인데 메뉴는 중국의 만두나 면요리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카운터 위에 걸린 메뉴판도 사진으로 표기되어 있어 주문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와 따뜻한 국수^^

간장으로 맛을낸듯한 기름진 갈색국물이 식욕을 돋구었다.

위에 올려나온 고명과 면을 섞기위해 젖가락을 갖다대는......데 순간적으로 불길함이 스쳤다;;;

설. 마. ?

아니겠지 하고 고명을 살짝 젖가락으로 집어 맛을 보.......'방심했다-_-!!!!!!'

그녀석(?)이었다.

여행기 2편([중국] 02. 이것은 자전거여행기 입니다에서 황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던 주인공.....그녀석....

'샹차이'...


향채,고수,팍치.....그리고 샹차이.

다양한 나라에서 그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중국,동남아 음식의 일등도우미 '샹차이'였다;;;;

난데없이 옆사람 멱살을 잡게 만드는(?) 강렬한 이국적인 맛은 또다시 이몸을 시험에 들게했다. 

이걸 그냥 먹자니 계속 '구역질'이 올라오고, 그렇다고 멀쩡한 음식을 남기자니 죄스러운 마음이라 어쩔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건 위에 뿌려진 샹차이를 면과함께 완전히(?) 섞지는 않았다는 것.

최대한 눈에 띄는 파편(?)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건져내고, 골라내면서 '면'만 건져먹기로했다-_-;;;;;;;;

물론 미세한 잔해(?)들까지 걸러내는데엔 한계가 있어 그냥 먹는수 밖엔 없었지만 한결 먹기가 수월해지긴 했다;;;

섬세하게 젖가락을 놀리고, 면을 흡입할때 마다 동시에 '우욱!'하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지금 상황을 보니 왜이리도 코미디스러운지;;;;

기가막히고 코가막혀서 웃음이 나온다.

정저우에 입성한 첫날밤, 황당한 에피소드지만 밉지않은 '신고식'이었다.



텅 빈 대도시의 버스정류장

너무 조용해서 자전거 채인 소리만 들립니다.

챠르르르르...-_-;;;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던 정저우기차역입니다^^;;

불빛도 밝고 사람들도 많고...안전한 곳이었지요.

저 말고도 날이 밝을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건너편에 보이는 큰 건물이 빈관.

보는것만큼 가격도 비싼곳이지요;;ㅋ


대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났던 엔더슨 할아버지.

맥도날드나 다른 낯익은 브렌드가 많이 보였습니다.


문제의 '샹차이 국수'-_-;;


샹차이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 커피한잔;;

24시 맥도날드에서 만난 날이 밝으면 귀가하기 위해 밤을 세던 친구들.




반응형
▲TOP